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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을 위한 시

시인 이필 씨

 

 

 우리는 생각보다 시를 많이 읽었을지도 모른다. 시집이 아닌 문제집을 통해서 말이다. 해석과 답이 정해진 과거의 시들. 대학 입시가 끝난 후에는 시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시를 잊고 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한 시를 읽었다.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린 <이주 여성 잔혹 살해사>라는 시였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였다. 시인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약속을 잡고 용산의 어느 카페에서 시인 이필 씨를 만났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이필 씨는 2016년 등단했다. <봄의 대곡선> 외 9편의 시가 「문학사상」 제69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다. 이전까지는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건강 악화로 일을 그만둔 뒤, 시를 쓰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이필 씨(사진=김태윤 기자)

 

 

시를 처음 만나다

 시는 긴 설명을 어려워하는 타고난 성격과 잘 맞았다. 직관적인 언어로 사물을 통찰할 수 있었다. 첫 시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시였다. 쓰는 것 자체가 다른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계기였다. 생각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할 때 주체를 본인으로 생각했지만 시를 쓰면서 자신을 대상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시는 한 단어에서 시작한다. 보통 한 번에 쓰고 몇 개월 뒤 수정을 한다. 바로 퇴고를 하면 객관적으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의 눈으로 다시 볼 때 이해되지 않거나 고칠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다른 시인들은 손 글씨가 편하다지만, 이필 씨는 자판을 봐야 시가 써지는 편이다. 자신의 작품 중에는 <해저 2만 리>와 <지저귀는 기계들에게>라는 시를 제일 좋아한다. <장밋빛 새벽>이라는 시도 이야기했다. 밤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다룬 시였다. 처음 발표할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좋은 비평을 남겼다고 한다. 이 경험을 통해 독자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담고 싶은 이야기들

 

 이필 씨는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와 미투 운동이 일어날 무렵 등단했다. 그 영향으로 기존에 쓰인 시들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유명 서정시인의 시에 이런 표현이 있어요. 저녁밥을 안 차려주고 나간 아내 때문에 서럽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 서러운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한국 문학에는 남성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표현들이 너무나 많다. 그는 시인으로서 대체할 언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시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주 여성 잔혹 살해사>라는 시는 그 중 가장 날카롭다. 제목 그대로 결혼 이주 여성의 죽음에 대한 시다. 시적인 표현은 찾을 수 없다. 처음과 끝을 제외하면 단지 이름과 죽음을 나열했다. 하지만 그 어떤 비유보다 깊이 폐부를 찌른다. 사실이 가지는 감각은 매서웠다.

「7월 4일 현지 시간으로 오후 5시, 베트남 하노이 외곽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장내는 여행사 직원과 픽업 기사들로 붐볐다. 입국장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 건너편에 피켓이 서 있다.
 
레티김동(22세 베트남) = 2007년 3월 대구, 남편(34세)과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아파트 9층에서 추락 사망했다. 임신한 몸으로 갇혀 있던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커튼으로 만든 밧줄을 타고 내려오던 중이었다. 후안마이(19세 베트남) = 2007년 7월 충남 천안, 결혼한 지 2개월 만에 남편(47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늑골 18개가 부러졌고 사망 2주 만에 시신이 발견되었다. ...(중략)....이**(31세 베트남) = 2015년 12월 경남 진주, 이혼 후 자녀 면접권을 가진 전 남편에게 딸과 함께 살해당했다. 부***(31세 베트남) = 2017년 6월 서울, 아이들을 데리고 잠을 자던 중 시아버지(83세)가 휘두른 칼에 사망했다. 시아버지는 피부색 다른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겸상도 하지 않았다. 
피켓 사이를 지나 한국인들이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


<이주 여성 잔혹 살해사> 전문, 계간 『황해문화』 2019년 가을 호 발표

“제가 썼다기보다는, 그 분들이 만든 시죠.”

 

현실을 살아가는 법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건 포기했다. 소설에 비해 인세도 적고 저작권조차 잘 지켜지지 않아 인터넷에 전문이 돌아다닌다. 그래서 시인들은 대부분 직업이 천차만별이다. 낮에 어린이집 운전을 하고 밤에 시를 쓰는 동료도 있다.

 

 이필 씨는 교정, 책 편집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인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업을 가지기 어렵다. 시를 쓰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시를 그냥 쓰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그 세 배의 빈 시간이 필요해요. 최소한 그 시간 동안 시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거죠.”

 

 페미니즘 웹진 <쪽>에 ‘세계 여성 시인’ 이야기도 연재한다. 국내에 저작권 문제로 실비아 플라스, 아드리안 리치 등 20세기 초중반의 시인들만 알려진 게 너무나 아쉬워 직접 기획한 코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외국의 여성 시인들을 소개한다.

 

웹진 <쪽> 세계여성시인 페이지(사진=웹페이지 캡처)

 

그럼에도, 시를 쓰다

 

 이필 씨는 내년 즈음 첫 시집을 낼 생각이다. 그 다음에는 프로젝트 시집을 만들고자 한다. 여성과 노동에 대한 프로젝트이다. 지나간 시대가 아닌, 지금 시점에서 논할 수 있는 노동과 여성에 대한 시들을 쓸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늘 경계하는 게 있다. 시를 쓰는 건 어떤 소재를 소비하는 행위다. 하지만 결과물이 시인의 성공으로만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전에 여성과 노동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작가의 감각과 주체성만 느껴졌고, 노동의 소외라는 주제는 잘 느끼지 못했어요.”

 

 그는 자신의 시를 소재가 된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대상들과 함께 나아가는 게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소외된 이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적인 성취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 곁에 있는지를 항상 고민하면서 살아야 해요.”

 

 카페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생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시집과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우산을 펼치고 빗속으로 걸어갔다.

기사                                     

최윤식 기자                                     

(yunsik97@naver.com)                                     

                  사진                                          

김태윤 기자                                     

(sarangvely3@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