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우리 18.0 <36.7> |  주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연동로 320 성공회대학교 

등록일자 : 2019/12/19|발행인 : 최영묵 | 편집인 : 나수진  | 웹제작 : 경도현 | TEL : 02-2610-4218

Copyright  (c) 2019. neouli18.0. All rights reserved.

로고.png

*이 웹사이트는 크롬 브라우저와 해상도 1920x1080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가시돋힌 장미로 살아가기

신문방송학과 박지원의 친구 정다예씨

 작년 이맘 때쯤, 해외봉사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별다른 고민 없이 승낙했고, 네팔에서의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 친구의 어떤 면을 보고 마음이 동한 걸까 생각했다.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위로를 주는 사람’이라는 결론과 함께 그 성향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매서운 칼바람이 창틈 새로 스며드는 겨울, 성공회대학교 학관에 위치한 루트온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정다예 씨를 만났다.

 

 

 

 

 

 

 

 

 

 

 

 

 

 

 

 

 

 

 

 

 

 

 

△ 정다예 씨 (사진=박지원 기자)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거든”

 정다예 씨는 평소에는 어머니 성을 더한 ‘정옥다예’로, 일할 때나 외국에 나갈 때는 ‘자야(JAYA 또는 ZAYA)’로 소개한다. 자야는 네팔어로 ‘그림자’라는 뜻이다. 네팔 해외교류 프로그램을 갔을 때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하던 홈스테이 가정의 아이가 비슷하다며 지어줬다.

 그의 어린시절은 마치 조명이 켜진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처럼 행동과 언어 하나하나 조심하면서 살았다. 이유는 초등학생 때 교사인 어머니와 같거나 가까운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의 담임선생님들은 곧 엄마의 동료였다. 입학식 날에는 담임선생님이 1학년 반을 전부 돌아다니며 선생님들께 인사를 시켰고, 집 앞에 지나가는데 엄마 제자들이 “얘가 선생님 딸이래”라며 인사한 일도 있었다. 언제나 남 눈치를 보며 모든 행동에 최선을 다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도 활짝 웃고 다녔고, 집 밖 슈퍼에 잠시 나가도 옷을 단정히 갈아입었다. 작은 행동이라도 본인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평판에도 영향이 간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눈치챘던 것 같다.

 

 

 

 

 

 

 

 

 

 

 

 

△ 정다예 씨의 어릴 적 사진 (사진=본인제공)

 

 중·고등학교도 사춘기나 일탈 없이 안녕히 지냈다. 그때는 친구의 수가 곧 자기 인생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해 반 친구는 물론 선생님들까지, 모두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빠지지 않고 잘 놀아서 인기도 꽤 많았고 공부도 잘했다. 말 그대로 어디 하나 모나지 않던 아이로 살았다. 대학에 와서도 비슷했다. 2015년 2학년일 때까지는 그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도 그를 좋아했다.

 

“사실 예전의 모습이 그립기도 해”

 그가 속해 있는 신문방송학과는 2016년도에 성폭력 공론화 사건이 일어났다. 정다예 씨도 공론화한 피해경험인 중에 하나이다. 피해경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17년도 반성폭력회칙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단어이며 『회칙상에서는 피해당사자 또는 피해자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피해경험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피해자를 성폭력 앞에 무력한 사람으로 규정해온 사회적 통념에 맞서기 위한 표현이다. 2015년 말에 학과 회장단에 낙선하고, 그는 바로 휴학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대 카페에서 그는 교내 성폭력 경험을 공론화했다. 이미 가해자는 외부에서 처벌을 받는 중이었지만, 집행부와 학과 사람들에게 성폭력은 한 사건뿐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공론화 이후 많은 질타를 받았다. 굳이 당시 집행부를 힘들게 했어야 했냐는 말도 들었고 군대에서 ‘왜 그때 내게 안 말했냐’며 나무라던 선배의 전화도 받아야 했다. 공론화를 하고 싶어하던 다른 피해경험인의 대변인도 되었고, 모르는 피해경험인들에게 자신들의 공론화 글을 미리 봐달라는 문자들도 많이 받았다. 반성폭력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던 그때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2차가해를 했고, 피해경험인이 자신을 지키려면 가장 앞에 나서야 했다.

 생각보다 휴학은 길어졌다. 가해자를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교수님 말에 종강을 2주 앞두고 중도휴학을 하기도 했다.

 

 

 

 

 

 

 

 

 

 

 

 

 

 

 

 

△ 학생회 활동 시절 정다예 씨 (사진=본인제공)

 

 이제는 조금씩 버틸 힘이라는 걸 찾아가고 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미움받을 용기도 서서히 채워가고 있다. 그는 예전의 본인이 그립다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마냥 웃고 많은 사람들을 챙겨도 지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솔직히 많이, 아주 많이 고민할 것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위해 웃어주는 것만큼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고 화낼 수 있는 나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자기를 떠올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여전히 안온한 사람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길이 부디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힘들기를 바란다.

글/사진=박지원 기자                                   

(bonaa04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