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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어느 부분이 존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문융합자율학부 이해인의 아버지 이호중 씨

 

 

 클래식부터 재즈, 트로트, 팝송, 샹송, 영화음악, 가요, 민중가요까지... 어렸을 때부터 아빠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듣고 자랐다. 또한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책만은 차고 넘치도록 사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아빠가 성공회대 교수님들의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나 역시 성공회대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성공회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평일에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주말이면 하루 종일 같이 놀던 아빠가 요즘 한참 푹 빠진 주제가 있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아빠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았다.

 

인간의 ‘존엄’에 관해 탐구하는 생활철학자

 학창시절, 호중 씨는 충청북도에서 늘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또한 매번 반장을 도맡아 하며 뛰어난 리더십도 보였다. 덕분에 성균관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고 대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호중 씨는 한신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꿈을 호중 씨의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학 생활에 대한 회의와 대기업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대학을 자퇴하고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있는 호중 씨 (사진=이해인 기자)

 

 호중 씨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호중 씨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인간은 존엄하다.’ 등 호중 씨는 이 모든 것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후 호중 씨는 가능한 모든 도덕, 관습, 사회적 기준들에 대해서 자신을 백지상태로 만들어 놓는 일, 즉 기존의 관념들을 모두 회의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죄와 벌>, <데미안> 등의 소설을 6개월 동안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호중 씨는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인간이 존엄하다는 근거를 찾느라 무지 애를 썼지만, 내가 어디가 존엄한지 나는 모르겠어. 어렸을 때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아버지, 어머니 중 내가 존엄하다고 느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학교에서 인간은 존엄하다고 계속 배웠는데,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존엄한 것 같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고민하다

 호중 씨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종교, 생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방향으로 고민을 많이 해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독서를 많이 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을 모두 구입할 수 없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본인의 카드와 딸의 카드로 책을 한 아름 빌려 온다. 호중 씨는 매일 집안일을 끝내 놓고 저녁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떤 후, TV 앞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호중 씨의 바닥 책상 (사진=이해인 기자)

 

 하지만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는 근거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저 현재는 ‘인간이 존엄하고 싶어하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인간은 존엄하지 않다. 다만 존엄하고 싶어하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격다짐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다양하게 고민하다

 호중 씨는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인 중 창조론을 이야기하면서 신과 비슷하게 창조되었다는 이유로 인간이 존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신의 뜻을 거역한 유일한 피조물 아닌가. 호중 씨는 성경을 수십 번을 읽어 봐도 성경에서 인간이 존엄하기는커녕 신이 시키는 대로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는 잔인한 살인마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한편 생물학의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언제부터 존엄성을 획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부도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인지, 호모 사피엔스부터인지, 아니면 더 멀리 유인원 때부터인지, 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이 존엄성을 획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고 가정하는 것까지는 뭐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인간이 존엄해서’라고 한다면, 호중 씨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존엄한 존재냐’라는 질문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당신은 당신의 어느 부분이 존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지금까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호중 씨는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인권, 꿈이라는 개념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것이다.

 

 “도대체 나의 어느 부분이 존엄하다는 건가 어렸을 때부터 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묻고 되물어도 알 수 없는데, 내가 존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는 희한해 보일 뿐이야.”

 

 

“치열하게 살아라”라는 말에 치열하게 저항할 뿐!

 호중 씨는 현재 특별한 목표는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살기도 바쁜데 목표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호중 씨는 그저 ‘편안하게 사는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목표’란 무엇인지 물으면,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사는 삶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하지만 호중 씨는 이 역시 매우 회의적이다.

 “나는 치열하게 사는 삶을 대단히 싫어해. 내가 치열하게 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치열한 삶을 강요한 모든 것들에게 제일 치열하게 저항하는 것이야.”

 그런 그도 꿈이 있었다. 어떤 꿈인지 물어보았다.

 “나도 꿈이 하나 있긴 했는데, 산 속에서 혼자 사는 거였어. 그런데 결국 그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어. 왜냐하면 어떤 여자를 만났거든. 그래서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어.”

 

 

 

 

호중 씨와 그의 아내 혜경 씨 (사진=이해인 기자)

 

 “나는 히틀러하고 평등하고 싶지 않아. 더군다나 최순실하고는 정말로 평등하다고 하고 싶지 않아. 나는 걔들과 평등한 이유를 찾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정말로 평등하다면 사는 게 정말 재미없을 것 같아.

 내가 그들보다 나은 존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건 정말 싫어.

내 비록 나 스스로 사기꾼이라 칭하지만, 그래도 걔들한테 견주는 건 너무 싫어.“

 

 

​글/사진=이해인 기자